네덜란드 후기의 작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서
선명한 색채와 정서적인 감화로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가장 유명한 미술가중 한명으로 남아있다.
초기 작품은 어두운 색조의 작품이었고, 후기 작품은 표현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고흐의 작품은 20세기 미술운동인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Wheatfield with Crows] 1890

[Dr Paul Gachet] 1890

[Bedroom in Arles] 1888

[Old man in sorrow] 1890

작품에서 느껴지는

우울한 감정 ?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고흐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우울’이라는 감정은 빠지질 않는 것 같다.
사실 그가 일생동안 빈번한 정신적 질환과 근심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자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자주 우울한 감정을 작품에 그대로 표현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반고흐의 우울한 감정에 대한 그 만의 예술적 표현을
사랑하고 이것을 세기를 넘어선 감동을 전해준다고 이야기 하고는 한다.
나 또한 반고흐의 작품과 그 작품에 녹아있는 우울함을 사랑한다.
그러다보니 그의 우울한 감정외의 다른 감정들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반고흐의 우울한 감정 외의 기쁨, 설레임, 고마움, 초조함의 감정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면서, 나는 더욱 더 빈센트 반고흐에게 빠져들었다. 모두들 반고흐가 우울한 사람이
었다고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반고흐의 다양한 감정을 찾아보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그는 우울
하기만 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그는 꽃을 좋아하는

순수한 사람이였다

반 고흐는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꽃을 사랑했다. 그의 작품 상당수는 꽃을 담은 것이 많았고,
그런 꽃의 그림들은 그가 자주 그리던 어두운 색채와 비참한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들과는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완전한 꽃에 대한 사랑은 한 작품으로 부터
그가 느꼈던 기쁨과 설레임과 함께 터져 나왔다. 바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1890] 가
그것이다. 반 고흐의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테오는 아들이 생기자, 반고흐에게 형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반 고흐로 짓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이에 감동받은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치료중에도
아름다운 아몬드 나무가 만개한 작품을 그려 조카에게 바쳤으며, 어머니에게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Irises] 1889

[Almond Blossom] 1890

[Sunflowers] 1888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조카의 방에 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그림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색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입니다.”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그는 죽음을

또 다른 여행이라 생각하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L'église d'Auvers-sur-Oise] 1890

[The Starry Night] 1889

[Café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1888

[La nuit étoilée, Arles] 1888

그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별이 무수히 빛나는 하늘을 무척 좋아했다.
1888년 9월, 아를에서 작성한 편지 속에서 그는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
이라고 적기도 했다.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도 다채로운 빛깔을 찾아낼 줄 알았던 그에게,
밤은 깜깜한 어둠이 아니라 풍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시간이였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반 고흐는 밤하늘과 죽음을 같게 보았다.
때문에 그에게 죽음이란 새로운 빛깔을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비록 그는 1890년 7월 27일, 쇠약해진 몸과 정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하게 되지만, 그는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면서
빛났던 그의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겨두고, 또 다른 여행을 찾아 떠났다.

“나는 내 삶을 위한 어떠한 확신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별들의 풍경은 나를 꿈꾸게 한다.”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그는 모든 화가들이 모여있는

화가 공동체를 꿈꿨던

야심에 찬 화가였다

[Van Gogh Self-portrait, dedicated to Paul Gauguin] 1888

[Paul Gauguin Self-portrait (in the role of 'Les Misérables') for Vincent] 1888

[Van Gogh's Chair] 1888

[Paul Gauguin's Armchair] 1888

고흐는 계속 가장 함께 하길 원했던, 존경해마지 않던 고갱에게 1888년 5월말부터 10월,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기 전까지 수많은 편지를 고갱에게 보낸다. 고흐는 자신의 동생 테오를
설득해 가난한 고갱의 빚을 모두 탕담해주었고, 아를에서의 숙식도 제공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고갱이 이를 수락했고 그렇게 둘은 같이 살게 된다.
고흐는 고갱이 도착하기 전에 그의 방에 꾸밀 열 두송이가 넘는 해바라기를 그린다.

둘은 만나기도 전에, 각자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주고받는다. 이 때 고흐가 고갱에게 보낸
자신의 모습은 일본 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영원한 부처를 모시는 승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혔다.

이렇게 서로의 자화상을 교환하고 얼마 안되어 고갱이 아를에 도착했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
<해바라기>를 고갱의 방에 걸어 존경을 표현했지만, 고갱은 아를과 노란집에 무척 실망을
했다. 고갱은 친구 베르나르에게 아를이 무척 작고 꾀죄죄한 곳이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갱은 고흐의 주변사람들을 무시했고, 자신의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작품들에 담았다. 고흐는 이런 고갱의 의도를 눈치 챘지만 애써 모른채 하는데, 그에게는
<화가 공동체> 실현이라는 더 큰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아를에 같이 살면서 함께 지냈지만,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했다. 고흐는 고갱을
존경했지만 자신이 고갱에 견줄 만한 화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고, 고갱은 고흐의 실력을
시기하면서도 고흐를 자신보다 깔보았다.
자기중심적이며 냉소적이었던 고갱과 다혈질에
열정적인 고흐는 사사건건 충돌했고, 결국 고갱은
아를을 떠날 결심을 한다.
고갱과 늘 부딪혔지만 막상 고갱이 아를을
떠나려고 하자 고흐는 불안 증세를 나타냈다.
고흐는 술에 빠져들었고, 외로워했다.
이 시기에 고흐는 자신이 즐겨 앉던 의자와
고갱이 즐겨 앉는 의자를 의인화하여 두 사람의
상징적인 초상화를 그렸다. 어떤 심리분석
학자들은 고흐와 고갱의 동성애적인 감성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난 더 이상 승리를 동경하지 않는다.
내가 회화에서 추구하는 것은 단지 삶을 감내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 Van Gogh's masterpiece 』


[The Starry Night, 1889]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고갱과 다툰 뒤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 이후 생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Wheatfield with Crows, 1890]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요동치는 빠른 필치로 거칠게 그려진 어두운 하늘과 불길한 까마귀 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세 갈래의 갈림길은 자살 직전 그의 절망감을 강하게 상징하는 듯하다.

[La nuit étoilée, Arles, 1889]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반고흐는 론 강가에서 빛이 투영된 물그림자를 통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구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하늘과 땅, 물과 같은 요소들에 자신의 미적 확신을 부여했다.

[Almond Blossom, 1890]


자신은 우울하고 피폐한 삶을 살았지만 사랑하는 조카만은 강인하고 밝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의 시작점에서 제일 먼저 피어나는 생명력을 가진 아몬드 꽃을 그렸다.

[Sunflowers, 1888]


반 고흐가 일곱 살 때 교회 무덤에서 자기 이름과 똑같은 이름의 아이 묘비를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태어나기 1년 전,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의 묘비였다. 그 무덤가에는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Irises, 1889]


빈센트 반 고흐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붓꽃'(아이리스)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은 현대에 와서 반 고흐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The Yellow House, 1888]


예술가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을 꿈꾸며 아를에 온 빈센트 반 고흐는 1888년 5월, 역에서 가까운 라마르틴 광장에 집을 빌렸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얼마 되지 않은 1888년 9월 말에 그린 것이다.

[The Yellow House, 1889]


반 고흐는 <반 고흐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세 작품을 그렸다. 가장 오래된 버전은 1888년, 반 고흐가 예술가 공동체 구성을 준비하면서 고갱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기에 그려졌다.

[The Night Café in Arles, 1888]


그림에 묘사된 곳은 마리 지누가 운영하던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이다. 아를에 머물던 시절에 반 고흐와 고갱은 모두 이 카페를 즐겨 찾았으며, 밤의 카페 모습을 자주 화폭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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